신라와 함께한 초겨울, 경주,
2008년 11월 21일, 며칠전 첫눈이 내리고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초겨울의 밤. 짧은 여행을 떠나기위해 가방을 챙기고 집밖을 나서기 시작했다. 평소보다는 포근한 날씨지만 초승달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에 낀 날씨는 오랜만에 외지로 나서는 이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 목적지는 경주다. 고등학생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왔던 장소이기는 하나 그때는 원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끌려만 다녔고, 그 장소의 역사나 찾는 목적은 모두 한귀로 흘려버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기에만 급급했던 나이였던지라 옛 추억을 되살렸으면 하는 바램으로 정하게 되었다. 물론 추천해준 이가 있기 때문에 움직인거였지만..
버스에서 내려 시간을 보니 05시 30분, 아직 여유가 있어선지 편의점에 들려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미리 차에 앉아서 기차가 출발하기 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11시경 경주에 도착, 경주 시티버스에 탑승까지 일단 일정대로 모든게 흘러갔다.
경주를 내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싶지만, 일단 지리도 모를 뿐더러 어떤게 좋은지도 모르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은 경주시티투어다. 천마관광에서 운행을 하는데 3가지 운행코스가 있다. 이중에서 제 3코스를 선택하고 그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뭇잎 모양이라곤 하지만 난 바가지처럼 보였다..
만약 중요한 것 이라면 죽을죄를 지은건가?
지금은 가을이 지난 초겨울인지라 나무잎을 모두 털어버린 나무들만 하늘을 향해 뻗어있을 뿐이다.
신라시대에는 왕이나 근친이 죽을경우 관에 시체와 함께 평소 사용하던 물건과 혹시나 다음생을 살아가는데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모두 넣어 장을 치뤘다고 한다. 관 위에 틈틈히 돌을 쌓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한개의 무덤을 만드는데 나름 규모가 큰편이다. 위의 '천마총'이라 불리는 무덤을 파헤치는데도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견고히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주변에도 많은 무덤들이 있으나 쉽게 발굴사업에 뛰어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진품들은 모두 박물관으로 보내고, 이 곳에는 가품들만 전시를 해놓은 것이다. 한개의 무덤에서 이정도 규모의 유물들이 나왔다면 다른 무덤들도 한번 발굴사업을 해본다면 좋은 역사 자료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약 대기업과 손을 잡고 나오는 유물을 1/N 로 나누자는 계약을 한다면 어느 기업이든지 뛰어들지 않을까 하는 한심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후문쪽에 위치한 호수다. 자연적으로 생긴건 아니고 한쪽에선 물을 끌어오고 한쪽에는 펌프로 물을 퍼내면서 순환시키고 있는 인공호수이다. 방문객들에게 관람 및 휴식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조성된 장소가 아닐까 싶다.
세번째 방문지는 '첨성대'이다. 얘기를 듣기로는 음력의 일수와 동일한 362개의 돌을 쌓아서 별의 움직임과 기후를 판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관측소라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천문대 정도이다. 특별히 복원사업을 벌이지 않았으며 지금의 형태는 예전에 지어진 그대로 고히 간직된 상태라 한다. 수 많은 전쟁통에서 잘 지켜져서 다행이지 싶다.
사다리를 놓고 가운데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서 위에 뚫린 지붕을 통해 별자리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모습이 한쪽에 묘사되어 있는데,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나도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으로 막혀있지 않다면 저 속으로 들어가 드리누워 하늘을 움직임을 지켜보고 싶었다. 아마 우물안에서 하늘을 바라다보는 느낌이 아닐까 한다.
점심을 먹고 네번째로 방문한 장소는 '석굴암'이다. 산 정상부근에 있는지라 버스를 타고도 약 20분가량 고불 고불 꺽어진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야만 했다. 올라가는 그 길이 너무 지루해 잠이들 무렵 도착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