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야기-용산2가동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오상이랑 출사하러 나선다. 오늘 출사 갈 동네는 남산기슭 마을 용산2가동, 이태원동 그리고 한남동이다.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내려 남산터널 방향으로 가다 미8군 캠프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해방촌길을 따라 먼저 용산2가동으로 올라간다. 길 양편 외국어로 쓴 간판들과 지나가는 외국인들 무리에서 이 동네 성격이 읽혀진다. 길 저 멀리 아직도 내게는 남산타워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N서울타워가 파란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서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옛날 45번 버스 종점이 나오는데, 중간에서 직각으로 꺾어 골목으로 들어가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다.
길 양편으로 다세대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한참을 올라간다. 45도 넘는 급한 경사 길을 쉬지 않고 오르니 장단지가 당기기 시작한다. 걱정되어 오상이에게 물어보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며 씩씩하게 올라가며 오상이가 오히려 아빠를 괜찮냐고 걱정을 해준다. 어느새 다 큰 것 같다. 헐떡거리며 올라가는 내 옆으로 음식점 배달용 오토바이가 여유 있게 올라간다.
조금 더 올라가니 보성여자중고등학교가 나온다. 이런 꼭대기에 학교, 그것도 여학교가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산꼭대기 있는 여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나와 다리가 굵어져 미워졌다고 하소연하던 어느 여대생의 이야기 떠올랐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기대했던 정겨운 느낌이 남아 있는 집들, 골목들을 만나지 못했다. 최근에 세워진 다세대주택들, 그리고 자동차까지 올라올 수 있을 정도로 넓혀진 길뿐이다. 골목마다 파란 하늘 아래 N서울타워가 보인다. 그 모습이 인상적인지 오상이는 연신 그 모습을 담는다. 이따금 열리진 창문 사이로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거의 다 올라온 것 같다. 큰 도로가 나오고 도로 뒤로는 다시 내리막이다. 아까 입구에서 중간에 꺾기 전까지 걸었던 도로를 그대로 계속 걸어 올라오면 이 도로와 연결된다.
도로 건너 내리막에 서자 힐튼호텔이 있는 후암동이 훤히 보인다. 내려가는 골목길의 경사가 급하다. 정상의 큰 길 전까지는 남향이었는데 여기서부터는 북향이다. 좁은 골목들이 구불구불 그리고 여기저기로 이어져 내려간다. 지나온 반대편 보다는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군데군데 옛집들을 허물고 그 집들이 만들어놓은 골목들마저 없애고 그 자리에 다세대주택들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헤치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어 자꾸 아쉬워진다.
후암동 쪽이 훤히 보이는 어느 집 옥상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한 여름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하는 어느 가족의 정다운 모습이 떠올랐다.
얼핏 시멘트로 대충대충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계단이지만 비정형적으로 좌우로 변하고, 높이도 제각각인 골목 계단은 오르는 이에게 적당한 긴장을 준다. 그 비정형적 리듬을 타고 오르면 오르는 이들의 피곤을 덜어주는 멋진 골목 계단이다. 한참을 이리저리 구부러진 골목 계단의 리듬을 타며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내려가다 다시 큰길이 있는 위로 올라간다. 그 때 골목 계단 사이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계단 사이가 유난히 높아 나중에 누군가가 덧붙여 놓은 디딤돌과 계단 옆 문 앞 섬돌에서 소박하지만 섬세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시멘트로 만든 벽과 나무문과 창틀을 페인트로 정성껏 칠해놓아 무채색 계단과 어우러져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느 집 옥상은 온통은 텃밭으로 꾸며져 있다. 아마도 갖은 채소들은 다 심어져 있는 듯싶다. 그 한 편에 놓여있는 장독이며 걸려있는 빨래조차도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골목 한쪽 집 앞 그리고 옆 공터에 놓인 갖은 채소며 화초에서 골목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용산2가동 속 갖가지 이름의 골목길 보성길, 해방촌길, 신흥길, 미리내길, 새싹길, 활터길, 두텁바위길을 조금 씩 다 걸은 것 같다. 종점을 지나 처음 들어왔던 길을 향해 걸어 내려간다. 길 건너편 산 위로 이태원동이 보인다. 시간이 제법 흘러 아까 올라오면서 봤던 빈 카페들에는 늦은 아침 식사를 하는 외국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듬성듬성 보인다. 이제 남산터널로 가는 길 위 육교를 건너 이태원동으로 간다. 그 길을 오상이가 시원하게 담는다.
2008.11.2
용산2가동, 서울

